그림동화전집 by scully_jy

그림 형제가 지은 동화 전집을 읽고 있다. 동화라고 만만히 보지 마시라! 수록된 얘기만 216개인 무려 986쪽에 달하는 책이다.

동화, 즉 童話=children's book 혹은 fairy tales는 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동화여야 하거늘 '좃치않은' 이야기가 참 많다. 물론 몇 해 전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듯이, 원작 자체가 워낙 잔인하고 성적인 코드가 많았다고 알려진 지금에 와서 새삼스레 잔인성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굳이 한 마디를 하자면 , 애 딸린 이혼남들 재혼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거다. 계모들은 하나같이 전처 소생의 아이들을 무지 싫어한다. 킥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뼈가 부러지게 일을 시키고 밥도 안 준다. 해적의 보물함같이 생긴 무거운 상자 안을 들여다 보라고 시켰다가 뚜껑을 세게 닫아 머리를 잘라 버리고 나머지 시체는 잘라 스프를 끓이기도 한다. 헐... 무서운 엄니들 같으니라구.

바보는 늘 한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삼형제 중엔 막내가 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리하다. 왕은 반드시 미션을 성공하는 자에게는 자기 딸을 주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부자들은 마음씨가 고약하다. 혼자 산에 사냥하러 가서는 절대 안 된다. 마녀가 꾀어서 새나 개구리나 돌로 변하게 하니까. 남의 화단에 있는 상추나 장미 따위를 함부로 꺾으면 절대 안 된다. 집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 연못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살려 주어야 한다. 그 물고기가 소원을 들어주거든.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ㅋㅋ이런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을 216개나 연이어 읽으려고 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아... 지금 절반쯤 읽었다. 그런데 읽다가 정말 당황스러웠던 이야기가 몇 개 있었다.


코르베스 씨


옛날 옛날 어느 곳에 암탉과 수탉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탉은 붉은 바퀴 네 개가 달린 아름다운 마차를 만들고 생쥐 네 마리를 마차에 달았습니다. 암탉은 수탉과 함께 마차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안 가서 둘은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세요?'
수탉이 대답했습니다.
'저기 저 쪽 코르베스 씨 집으로 가고 있어요.'
그러자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나도 같이 갑시다.'
'좋아요. 뒤에 타요. 앞에 타면 떨어질지 모르니까.
조심해요 여러분.
나의 빨간 바퀴를 더럽히지 말아요.
바퀴들아 천천히 가자
쥐들아 찍찍하고 울어다오.
저기 저쪽 코르베스씨의 집을 향해서.'
얼마를 가지 맷돌이 나타났고 , 그 다음에는 달걀이 , 그 다음에는 오리가, 그 다음에는 핀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늘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마차에 올라타고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코르베스씨 집에 도착하니 집주인은 없었습니다. 쥐들은 마차를 끌고 가서 헛간에 넣었고 암탉과 수탉은 횃대로 날아 오르고 고양이는 화덕 옆에 쪼그리고 앉았고 오리는 두레박 안에 들어가고 달걀은 수건을 말아 그 속으로 들어갔고 핀은 푹신한 의자에 꽂히고 바늘은 침대로 가서 베개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맷돌은 문 위에 누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코르베스씨는 난로로 가서 불을 피우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가 코르베스씨의 얼굴에 재를 날려 얼굴을 재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코르베스씨가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재를 씻어 내려고 하자 계란이 굴러나와 깨졌기 때문에 깨진 알이 코르베스씨의 눈을 두 개나 막아버렸습니다. 코르베스씨가 쉬려고 의자에 앉자 핀이 쿡 찔렀습니다. 코르베스씨는 기분이 언짢아져서 침대에 벌렁 누웠습니다. 베개를 벤 순간 바늘에 찔렸기 때문에 코르베스씨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관문까지 오자 맷돌이 뛰어내려 코르베스씨는 납작하게 눌려 죽고 말았습니다.
코르베스씨는 아주 나쁜 사람이었나 봅니다.



=>이건 완전 이지메 수준아닌가? 아무 목적 의식없이 뭉친 닭들과 고양이와 맷돌과 달걀과 오리와 핀과 바늘이 도대체 왜 '아주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는 코르베스씨한테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이야기라니... 게다가 저 성의 없는 끝맺음. '코르베스씨는 아주 나쁜 사람이었나 봅니다.' 장난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 다시 보니 오리는 가담하지 않았네...착한 것. 실행착수 이전의 공모관계 이탈을 하다니...불쌍한 코르베스씨. 난로에 불 한 번 피우려고 했다가 죽음에 이르르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읽고 일순간, 정확히는 3.9초 정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트루데 아주머니

옛날 옛날 어느 곳에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제멋대로인데다가 고집이 세서 부모님이 무엇인가를 시켜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이치고 제대로 된 아이가 없지요.
어느 날 아이가 부모님에게 말했습니다.
'트루데 아주머니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그 분이 사는 곳은 별나대요. 그 분 집에는 묘한 것이 있대요. 그러니 가보고 싶어요.'
그러나 소녀의 부모님은 단단히 말렸습니다.
'트루데 아주머니는 나쁜 여자야. 벌 받을 짓만 저지른단다. 네가 거기 가는 날에는 우리 자식이 아니다.'
그러나 소녀는 부모님의 당부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앞뒤 생각없이 트루데 아주머니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집에 닿자 트루데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얼굴이 왜 그렇게 새파랗니?'
'방금 본 것이 너무 무서워서요.'
'무엇을 보았는데?'
'층계에서 시커먼 남자를 보았어요.'
'그건 숯쟁이야.'
'파란 남자도 보았어요.'
'그건 사냥꾼이고.'
'그 다음엔 피같이 빨간 남자도 보았어요.'
'그건 짐승을 잡는 백정이야.'
'오, 트루데 아주머니, 깜짝 놀랐어요. 창문으로 보니 아주머니가 아니라 머리에 불이 타고 있는 악마가 보였어요.'
'그래?그럼 너는 마녀가 맵시있게 단장한 모습을 보았구나. 나는 네가 오기를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필요했어. 붉게 타다오.'
이렇게 말하더니 트루데 아주머니는 소녀를 나무토막으로 만들어 불길에 던져 넣었습니다. 나무가 훨훨 타오르자 아주머니는 그 옆에 바짝 다가앉아 불을 쬐면서 말했습니다.
'그것 참 잘도 탄다.'



=> 아 이건 뭐 현대 단편 소설도 이에 비할 바가 못된다. 트루데 아주머니의 저 시크한 대사. '붉게 타다오.' ㅋㅋㅋㅋㅋ거기에 모던한 무심함까지. '그것 참 잘도 탄다.'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 매우 동양적인 정서가 짙게 묻어나는 서양 동화. 엄마 말을 들으면 나무토막신세를 면한다. ㅋㅋㅋ


늑대와 사람

어느 날 여우가 늑대에게 사람은 매우 강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 어떤 동물도 사람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빈틈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늑대가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 본다면 나는 단숨에 덥치고야 말겠다.'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면 내가 도와줄게. 내일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와. 그러면 사람을 보여줄게.'
늑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여우에게 왔습니다. 여우는 사냥꾼이 매일 다니는 길로 늑대를 데리고 갔습니다. 맨 처음, 군대에서 제대한 늙은 병사가 왔습니다.
늑대가 물었습니다.
'저게 사람이냐?'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 저건 전에 사람이었던 녀석이야.'
다음은 학교에 가는 어린 소년이 왔습니다.
'저게 사람이냐?'
'아냐, 저건 앞으로 사람이 될 녀석이야.'
마지막으로 사냥꾼이 왔습니다. 그는 이연발총을 어깨에 메고 옆구리에는 사냥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늑대에게 말했습니다.
'봐, 저기 오는 것이 사람이다. 자 녀석을 덥쳐. 나는 뒤로 물러나 있을 테니까.'
늑대는 사냥꾼은 향해 달려갔습니다. 사냥꾼은 늑대가 오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차, 늑대를 쏘는 총알을 쟁여두어야 했는데.'
그러더니 사냥꾼은 새를 쏘는 산탄을 늑대의 얼굴에 명중시켰습니다. 늑대는 몹시 아파서 얼굴을 찌푸렸지만 기가 죽지 않고 돌진했습니다. 그러자 사냥꾼이 두발째를 쏘았습니다. 늑대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사냥꾼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번쩍이는 칼을 꺼내더니 좌우로 휘둘러 늑대의 몸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늑대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울부짖으면서 여우에게로 뛰어 왔습니다. 여우가 물었습니다.
'늑대야, 어떤 식으로 사람을 해치웠니?'
'아이구, 말마.  사람이 그렇게 강한 줄은 몰랐어. 처음에 녀석은 어깨에서 막대기를 내리더니 숨을 불어 넣더라구. 그러자 무엇인가가 나의 얼굴로 날아와서 내 얼굴을 긁었어. 그가 다시 막대기에 숨을 불어넣으니까 내 코 언저리에 우박 같은 것이 날아왔어. 내가 바로 옆까지 가자 녀석은 반짝거리는 갈빗대를 하나 뽑아 나에게 마구 덤비지 않겠어? 까딱하면 죽을 뻔 했지.'
여우가 말했습니다.
'거봐, 넌 언제나 허풍을 떨어서 말과 행동이 맞지가 않아.'



=> 불쌍한 늑대. 늑대 눈에 비친 인간의 무기는 아마 정말로 저러할 지도 모른다. 지구보다 문명이 훨씬 발달한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를 침공해 올 때 쓰는 무기가 우리의 눈에 저리 생경하지 않을까. ㅋㅋㅋㅋㅋ
여우의 말이 귀엽다. 노인은 전에 사람이었던 녀석이고 어린 소년은 앞으로 사람이 될 녀석이라니. 놀라운 상상력에 박수! 엽기변태적인 작태 마구 뽐내 주시던 그림 형제에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상상력이 숨겨져 있다니! 힛 정말 좋아했던 , 몇 안되는 이야기들 중의 하나.

마지막으로 경쾌한 운문 한 편

카트리넬예와 필 팝 폴트리

안녕하십니까, 홍차 아버님?
그래 , 필 팝 폴트리.
아버님의 딸을 제가 신부로 맞고 싶습니다.
좋지 , 하지만 먼저 젖소 어머니, 거인 오빠, 치즈 언니, 예쁜이 카트리넬예가 찬성해야 해. 그들이 좋다면 난 상관 없다.

그럼 젖소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요?
외양간에서 젖소의 젖을 짜고 있다.

안녕하세요, 젖소 어머니?
그래, 필 팝 폴트리.
어머니의 딸을 제가 신부로 맞고 싶습니다.
그래 , 좋지. 홍차 아버지와 거인 오빠, 치즈 언니, 예쁜이 카트리넬예가 좋다고 한다면 상관 없지.

거인 오빠는 어디 있나요?
헛간에서 나무를 패고 있단다.

안녕하세요, 거인 형님?
그래, 필 팝 폴트리.
누이 동생을 아내로 맞고 싶어요.
좋지. 하지만 먼저 홍차 아버지하고 젖소 어머니, 치즈 언니의 찬성이 있어야 해. 그리고 예쁜이 카트리넬예가 찬성한다면 상관 없어.

그럼 치즈 언니는 어디 있나요?
밭에서 양배추를 자르고 있단다.

안녕, 치즈?
그래 , 필 팝 폴트리.
동생을 신부로 데려가도 될까요?
좋아. 홍차 아버지, 젖소 어머니, 거인 오빠, 그리고 예쁜이 카트리넬예가 찬성이라면 상관 없어.

그럼 예쁜 카트리넬예는 어디 있어요?
자기 방에서 잔돈을 세고 있을 거야.

안녕 예쁜이 카트리넬예?
안녕 필 팝 폴트리
내 신부가 돼주지 않겠어?
좋아. 홍차 아버지와 젖소 어머니, 거인 오빠 그리고 치즈 언니가 찬성한다면 상관 없어.
예쁜이 카트리넬예. 지참금은 얼마나 가져올 거야?
현금이 14페니히, 빚이 2그로센하고 반, 마른 과일이 반 파운드, 八자 모양의 빵 한 줌, 당근 한 줌. 대충 이래요. 대단한 지참금은 아녜요.

핍 팝 폴트리, 당신이 하는 일은 뭐에요? 양복장이?
더 좋은 거
구두장이?
더 좋은 거.
농부?
더 좋은 거.
가구 직공?
더 좋은 거.
대장장이?
더 좋은 거.
방앗간 주인?
더 좋은 거.
혹시 빗자루 만드는 사람?
맞았어. 좋은 일이죠?




=> 결혼할 장본인에게 젤 늦게 물어 보다니...너무 한 거 아냐? 
홍차 아버지와 젖소 어머니 사이에서 난 자식들이 거인과 치즈라니... 카트리넬예가 예쁘다는 거 별로 신빙성 없는 거 같은데. 흠
그건 그렇고 양복장이<구두장이<농부<가구 직공<대장장이<방앗간 주인<빗자루 만드는 사람?
나같으면 방앗간 주인에 올인한다. ㅋㅋ

덧글

  • ^^ 2011/03/21 00:31 # 삭제 답글

    그림형제의 작품 중 아이들을 위한 동화는 일부에 불과하며 fairy tales는 동화가 아닌 민담, 그 중에서도 요정담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잔혹한 이야기들이 많지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