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발췌 by scully_jy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 너무 인간적인> 에서 발췌
예전에 한참 심취해서 읽던 책. 여기 소개하는 부분은 포스트잍이 붙여져 있던 페이지들이다. 꽤나 진지하게 읽었나 보다.
낙관주의와 강한 긍정이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면, 염세주의는 일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반면 확실히 사물과 세상 이치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측면도 있다.
...또 어떻게 보면 죄다 궤변같기도 하다.
요즘엔 내 마음을 가라 앉히기 위해 필요할 때만 아주 가끔씩 들춰 보는 책.




162.
허영심에서 오는 천재 예찬 ㅡ 우리는 스스로를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자신이 라파엘로 그림을 스케치하거나 셰익스피어 극같은 장면을 하나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러한 능력을 지나치게 특별한 것, 아주 희귀한 우연으로 믿거나 종교적으로 신의 은총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예찬을 부추긴다. 왜냐하면 천재를 한낱 기적으로서 우리와는 아주 먼 존재라고 생각할 때만 천재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투 없는 사람인 괴테조차도 셰익스피어를 그의 가장 먼, 가장 높은 별이라고 불렀다 . 여기에서 우리는 "별, 그런 것을 사람들은 원하지도 않는다" 라는 그의 시구를 상기하느 것이 좋겠다. ) 그러나 우리의 허영심의 그러한 속삭임을 간과하면 천재의 활동도 결코 기계의 발명가, 천문학자 또는 역사학자 , 전략의 대가의 활동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이 모든 활동은 자신의 사고를 한 방향으로 활용하거나 모든 것을 소재로 이용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내적인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며 여기저기에서 모범과 자극이 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자기의 수단으로 짜 맞추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천재도 먼저 주춧돌을 놓고 그 다음 그 위에 세우는 일을 배우게 되면 부단히 소재를 구하고  그것을 이리저리 만들어 보는 일을 할 뿐이다. 단지 천재의 활동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은 놀랄 만큼 복잡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기적은 아니다. 그런데 예술가, 연설가, 철학자에게만 천재가 있다는 믿음, 그들만이 직관을 가졌다는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람들은 분명 위대한 지성이 끼치는 영향이 가장 기분 좋게 느껴져서 자신이 질투를 느끼지 않을 곳에서만 천재에 대하여 말하게 된다. 누군가를 신과 같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우리가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들어진 모든 것, 완전한 것은 경탄의 대상이며 생성 중인 모든 것은 경시된다. 그런데 예술가의 작품인 경우에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생성되었는가'를 그 누구도 볼수가 없다. 이것이 예술가의 유리한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성 과정을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언제가 조금 냉정해 지기 때문이다. 완성된 표현 예술은 생성에 관한 모든 사유를 거부한다. 그것은 현재 완성된 것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표현의 예술가는 주로 천재적이라고 인정되지만 학자는 그렇지 않다. 실로 예술가를 존중하는 것과 학자를 경시하는 것은 이성의 유아기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39.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금욕주의자 역시 자신의 삶을 가볍게 만들려고 애쓴다. 즉 그는 흔히 생소한 의지 또는 광범위한 법규와 의식에 완전히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가볍게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면 브라만 승려가 자기 자신의 규정에는 아무것도 의존하지 않고 항상 모든 일을 신성한 규칙에 따라서 규정하는 것과 같다. 이 복종은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으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되고 고집과 정열의 자극도 받지 않게 된다 : 행동을 완수한 뒤에도 책임감이 없고 따라서 후회의 고통도 없다. 인간이 단 한 번에 완전히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가끔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울 것이다 : 그것은 어떤 욕망을 완전히 단념해 버리는 것이 욕망의 절도를 지키는 것보다 더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가 국가에 대한 군인의 현재 입장을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도 무조건적인 복종이 조건 있는 복종보다 훨씬 더 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자는 개인적인 것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가볍게 만든다. 우리가 그 현상을 도덕성의 최고의 영웅적 부분이라고 감탄한다면,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방법으로 풀이하자면 어쨌든 자신의 개인적인 것을 아무런 동요와 애매함도 없이 관철시킨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는 훨씬 많은 정신과 사색이 필요하다.





102.
인간은 항상 선하게 행동한다  ㅡ 자연이 뇌우를 내려 우리를 젖게 했다고 해서 자연을 비도덕적이라고 탓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해를 끼치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후자의 경우에는 자의적으로 나타나는 자유의지를, 전자의 경우에는 필연성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오류이다. 또한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 비도덕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예를 들어 인간은 모기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의도적으로 죽이고 우리 자신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 범죄자를 의도적으로 처벌하고 그에게 고통을 준다. 첫번째 경우는 개인이 자기 보존을 위해서 또는 자신이 불쾌해지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자가 되며, 두 번째 경우에는 국가가 그러하다. 모든 도덕은 의도적으로 해를 가하는 것을 정당방위로 인정한다 : 단 그것이 자기보존의 문제가 되는 경우라면.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하는 모든 악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 관점만으로도 충분하다 :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쾌감을 원하고 불쾌감을 없애고자 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자기 보존의 문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말은 타당하다. 즉 인간은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선을 행한다. 인간의 지성의 정도와 이성의 갖가지 척도에 따라 언제나 자신에게 선하게 (유리하게 ) 보이는 것을 행한다.




81.
피해자와 가해자의 착각들 ㅡ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서 어떤 소유물을 (예를 들면 영주가 서민한테서 연인을 ) 빼앗을 경우, 가난한 자는 착각을 한다 : 자신이 소유한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뺴앗아갈 정도로 그 사람은 참으로 흉악한 사람임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자는 개개의 소유물의 가치를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줄 모르며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심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양자 모두 서로에 대하여 잘못된 표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분개할 만한 권력자의 부정도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것은 아니다. 이미 물려받은 감각은 더 높은 것이 요구되는 더 고귀한 존재가 되기 위해 그들을 매우 냉정하게 만들고 양심을 무디게 한다 : 만약 우리와 다른 존재의 차이가 아주 크면, 우리는 모두 부정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예를 들어 모기 한 마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이게 된다. 그래서 크세르크세스 Xerxes (그리스 사람들조차 모두 그를 특별히 고귀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 의 경우, 전체 원정군에게 불안하고 불결한 불신감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몸을 토막내게 한 것은, 그의 사악함의 표시가 아니다 : 이런 경우에 한 개인은 마치 불쾌한 곤충처럼 제거된다. 세계의 지배자가 오래 느끼도록 자극하기에는 그는 너무나 무가치한 존재다. 그 뿐 아니라 어떤 잔인한 자도 학대받은 자가 믿고 있는 그런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다 : 고통을 상상하는 것은 고통당하는 괴로움과는 같지 않다. 공정하지 못한 재판관과 사소한 부정직함으로 인해 세상의 여론을 오도하는 저널리스트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원인과 결과는 이런 모든 경우에 전혀 다른 감정과 사상들로 둘러 싸여 있다 : 반면 사람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이 생각하며 느낀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이 전제에 입각하여 한 사람의 죄를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측정한다.






60.
복수하기를 원하는 것과 복수하는 것 ㅡ 복수심을 품는 것과 복수를 실행하는 것은 격렬한 열병의 발작에 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복수를 실행할 힘과 용기가 없는데도 복수심을 품는 것은 만성병, 육체와 영혼의 중독증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의도만을 중시하는 도덕은 두 경우를 양이 같은 것으로 평가하고, 통상적으로 전자의 경우를 더 나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마도 복수의 행동이 수반할지도 모르는 나쁜 결과 때문일 것이다 ). 두 가지 평가 모두 근시안적이다.






41.
변하지 않는 성격 ㅡ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옳지 않다 : 자주 인용되는 이 명제는 오히려 인간의 짧은 삶의 기간 동안에 영향을 끼치는 동기는 대개 몇천 년 동안이나 새겨져 있던 문자를 파괴할 정도로 깊이 균열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만약 80000살의 인간을 생각해 보면, 그에게서는 아주 가변적인 성격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서 수많은 다양한 개인이 잇달이 발전되어 나올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짧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의 특성에 관한 여러 가지 잘못된 주장들이 제기된다.



덧글

  • 2008/09/18 22: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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